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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과 검증
작성자 | 한근태
등록일 | 2003-08-13 10:21:15 조회수 | 7903 추천 | 0
가끔 보는 프로 야구에는 해설가가 누구냐가 중요한 요소다. 어떤 이는 차라리 없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안타를 맞는 것은 곤란합니다. 팀 분위기를 해치지요." 라는 식의 해설은 삼척동자가 봐도 다 아는 것이다. 안타란 언제 맞아도 좋지 않은 것 아닌가? 주자가 도루에 실패하면 무리한 도루는 안 된다는 식의 해설이다. 만약 성공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도루로 게임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얘기했을 것이다. 누구나 뻔히 보고 있는 것을 얘기하는 것, 하나마나 한 얘기를 하는 것, 사후약방문식의 처방 등은 전문가가 할 영역은 아니다. 친구들끼리 수다 떨면서 할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하일성 해설위원을 좋아한다. 그는 다르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끊임없이 경고하고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폼이 흩어졌네요, 팔로우스루가 나빠 홈런을 기대하기는 힘드네요, 볼이 가운데로 몰리는 게 컨디션이 좋지 않네요, 견제구를 던지지 않으면 도루를 허용할텐데요…" 많은 경우 게임은 그의 예측대로 흘러간다. 볼이 가운데로 몰린 투수는 안타를 허용하고 교체되거나, 견제구를 던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루를 허용하고… 그를 보면 전문가란 역시 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히딩크 감독 역시 대표적인 전문가다. "한국 축구는 정신력, 체력 다 좋은데 마지막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식의 막연한 분석 대신 정량적으로 새로운 진단을 내놨다. "프랑스, 이태리 등 일류 선수를 100으로 쳤을 때. 한국 축구는 힘과 지구력 50, 기술 85, 전술 60, 스피드 80, 자신감 60, 경험과 불안 억제력 30, 경기 중 의사소통 및 책임감 20. 성취동기 100, 국가와 축구에 대한 사명감 99" 그 중에서도 특히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체력이 없이는 정신력도 소용없다. 한 경기에는 180 번의 순간 동작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 회복 속도는 평균 30 초 남짓이다. 그 안에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선수들이 러닝 후에 정상 맥박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4 분이다. 하지만 더 줄여야 한다. 회복력이 받쳐주지 않고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 예전의 진단과는 달리 그는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월드컵이 얼마 안 남았는데 한가하게 체력단련이나 한다는 비아냥이 있었지만 그는 전문가다운 분석을 통해 이를 밀어 붙였고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전문가란 누구일까?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훈련되어야 할까? 내 정의는 이렇다. "전문가란 그 분야에 있어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다. 일반인들보다 나은 통찰력을 갖고 나름대로 진단할 수 있고 처방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남들도 뻔히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전문가가 할 일이 아니다."

이런 날카로운 눈을 위해서는 책을 많이 보고, 현장 경험도 많아야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사고의 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일성씨, 타이거 우즈의 코치 부치 하먼, 히딩크의 공통점은 일류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통해 그 분야에서 일정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어떻게 해야 이런 탁월한 틀을 가질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가설과 관찰이 필요하다. 많은 경기를 보더라도 별 생각 없이 그저 보는 것과 추측을 하면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 가설을 세우고, 추측을 하면서 관찰을 하게 되면 내공이 하루하루 늘 수 밖에 없다. 관찰을 통해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가설을 생각하거나 만들게 될 것이고, 관찰을 통해 검증된 가설은 그 자체가 이론이 되는 것이다. 경험이나 관찰을 통해 이론을 확인하면서 그 이론은 더욱 탄탄하게 된다. 그 과정이 전문가가 되는 길이다.

유 사장은 그런 식의 학습방법으로 골프의 고수가 되었다. 그는 책을 통해 골프의 이론을 배웠고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발전 속도에 모두 놀랐는데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필드에서 그의 노하우를 듣게 되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치는 것을 보면서 예측을 합니다. 스탠스 때문에 슬라이스가 날 것이다, 고개가 먼저 돌아가기 때문에 어떻게 될 것이다, 스윙이 너무 빨라 제대로 맞추지 못할 것이다…" 막연히 보는 것보다 재미도 있었고, 이런 식으로 예측하고 검증하는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나름대로 골프를 보는 눈이 트였다는 것이다. 그는 필드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시기 적절한 원 포인트 렛슨을 하여 큰 도움을 주는데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간단하게 처방하기 때문에 게임을 하면서 나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노하우를 모아 연말에 골프 관련 책을 펴낼 예정이란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골프를 친 나는 구력이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원시인 수준이다. 하지만 구력이 나보다 훨씬 짧은 그는 이미 전문가의 영역에 들어섰다.

"나는 추측이 없이는 뛰어난 관찰도 독창적인 관찰도 없다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1867년 찰스 다윈이 알프레드 월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이다. 가설을 세워보는 것, 이를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검증하는 것, 이는 과학의 발전방향이고 동시에 전문가가 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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