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소설가 최인호씨를 좋아한다. 샘터에 연재하는 '가족'을 오랫동안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 대해 애정이 생긴 것이다.
고정칼럼 '가족'은 최인호씨의 개인적인 가정 얘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부인에 관한 이야기, 다혜와 도단이 이야기, 어머니와 아버지, 형님과 누나 얘기를 주로 한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진다. 몇 년 전 최인호씨를 그렇게 사랑하던 큰 누님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눈물까지 흘렸으니 나도 참 모자란 인간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얘기만큼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없다. 나는 아내와 결혼한지 20년이 넘었고, 그 사이에 화영, 지연 두 딸이 있다. 큰 딸 화영이는 이번에 대학엘 들어갔고, 미국에서 태어난 둘째 지연이는 올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둘 다 유학시절 낳았는데 유학생 신분으로 애 둘을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학위를 받으려면 1년 이상 더 있어야 했고, 당시 집사람은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장모님이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된 지연이를 데리고 가서 키웠는데 결국 1년 반을 애와 떨어져 있게 되었다.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지연이는 할머니만을 찾아 밤마다 울어대는 통에 몇 달 고생을 했다.
정말 `부모와 자식은 떨어져 지내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그 때 절실히 했다. 하지만 교육 때문에 또 떨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 집은 바퀴벌레 가족이다. 늘 붙어 있기 때문에 지은 별명이다.
밖에서 노는 것보다는 집안에서 가족끼리 붙어 노는 것을 좋아하고, 집에서도 늘 옹기종기 붙어서 지낸다. 어디를 놀러 다니는 것 보다는 집안에서 서로를 놀리고 뭉개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소심한 나와 집사람을 닮아 애들 또한 소심하고 사교성도 적다. 또 서로에게 매우 의존적이다. 밖에서 낯선 사람하고는 한 마디도 안 하지만 집안에서는 수다왕이다.
지연이는 공부에 별 관심과 열의가 없다. 그렇다고 게으른 것도 아니다. 뚜렷이 뭘 하겠다는 목표의식이나 좋아하는 것은 없지만 연예인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빛난다. 노래를 좋아해 새로 나온 노래는 귀신같이 알고 따라 부른다.
언니를 무척 좋아해 어딜 나갔다 오면 첫 마디는 늘 "언니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를 놀리다 얻어 터지고 집안이 떠나가게 운다. 지연이의 강점은 부지런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의 잔심부름은 모두 지연이가 한다. 지연이는 우리 집에 활기와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존재이다. 지연이가 사라지자 존재의 위대함이 드러났다. 바로 집안이 적막강산으로 변했다.
정말 좋은 부모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부모 옆에 계속 끼고 사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교육을 위해 보내는 것이 나은지…. 하지만 자식이 언젠가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려니 생각하며 나 자신을 위로한다. 의존적인 우리 가족과 지연이를 위해서도 더욱 그러하다.
"당신은 당신의 아이들이라는 화살을 쏘기 위해 있어야 할 활과 같은 존재이다. 화살이 잘 날아갈 수 있도록 활이 지탱해 주어야만 화살이 멀리, 정확히 날아갈 수 있는 법이다"라는 칼릴 지브란의 말을 위로 삼아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지연이가 보고 싶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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