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다.
만주족 누르하치는 무능한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세운다. 문명과 야성이 결합해 복합 시너지를 낸 역사상 최대의 윈윈 게임이다.
만주족은 중국의 경영권을 인수해 중국의 야성을 회복한다. 한족에 대해 연구하고 준비한 결과 중국을 얻을 수 있었고, 인수 후에는 희생과 헌신을 다한다.
통합 이후 200년간 중국을 지배하면서 중국을 뛰어난 국가로 성장시킨다. 그런 누르하치의 성공 요인이 무엇일까.
첫째, 여진족의 조직화다. 개인으로 혹은 작은 조직으로 거대 중국에 맞서기는 불가능하다. 어렵게 여진사회를 통일한 누르하치는 강력한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래서 만든 것이 그 유명한 기조직 팔기이다.
팔기제란 기 색깔에 따라 8개로 구분한 군대 편성 단위인데 원래 사냥에서 출발한 조직이다. 사냥 때 이들은 짐승을 몰아넣는 장소에 황색기를 세워놓고 진을 친다. 남색기를 선두로 좌우에 홍색기와 백색기가 둘러싼다.
지휘자의 명에 따라 포위망을 좁혀가며 사냥감을 서서히 몰아간다. 놀란 짐승은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황색기 근처로 가 최후를 맞이한다. 만주족은 누구나 어느 깃발에든 소속되어야만 한다.
군대의 동원과 통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 부족을 조직화한 것이며, 한편으로는 행정조직이기도 하다. 군민일체의 조직이고 세금과 부역을 납부하는 경제조직이기도 하다. 여진족의 승리는 팔기제의 승리이다.
둘째, 개방주의다. 지배 지역이 늘면서 인재의 수요도 크게 증가한다. 누르하치는 열린 정책과 적재적소의 원칙을 적용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한족관료, 투항자, 귀순자, 포로 등을 적극 받아들여 이들의 지식을 십분 활용한다.
최신 기계 홍이포를 제작한 것도 외부인이다. 공유덕, 취중명, 상가회 등 명의 대장군을 끌어들여 한족을 지배하게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은 모두 존중한다. 재능 있고 행정에 민첩한 자는 누구든지 임명하고 혼인시켜 주겠다." 누르하치의 선언이다. 한족을 통해 한족을 지배한 것, 외부인을 적극 끌어들여 자신을 위해 일하게 한 것, 열린 사고는 성공에 필수적이다.
셋째, 프로젝트의 일관성이다. 이들은 3대에 걸쳐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그 결과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이들이 일곱 가지 한을 내세워 대명 선전포고를 한 것은 1618년이다. 그리고 1644년 북경에 입성한다.
27년이 걸렸다. 그리고 명의 잔당을 완전히 몰아낸 것은 1683년의 일이다. 무려 6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창업자 누르하치의 정신을 후대들이 이어갔기 때문이다.
넷째, 경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전쟁은 곧 경제다. 정치도 경제문제가 해결되어야 가능하다. 누르하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춘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는데 여기서 경제에 눈을 뜬다.
칙서를 활용해 중국과의 무역에서 실리를 추구한 것도, 여진 내부에서 채취한 1 차 상품에 대한 독점권을 획득한 것도 모두 경제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요동성을 점령한 것도 지정학적 중요성과 함께 요동성의 풍부한 식량 때문이었다.
만주족은 전투에 참가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들에게 출병은 부의 획득 기회였기 때문이다. 병역을 경제와 연계한 만주족 군인과 강제로 끌려 나온 한족과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다섯째, 효과적인 지배 메커니즘의 개발이다. 만주족은 한족의 약 2%에 불과하다. 인원이 적을수록 민족적 동질성과 공동체 의식은 중요하다. 만주족의 혈통 보존을 위해 이들은 한족과의 혼인을 철저히 통제한다. 다른 종족 간 혼인금지, 대도시 거주구역의 분리, 만주 지방 보호를 위한 만주 땅으로의 이주 금지 등이 그것이다.
변발강요는 가장 강력한 정책이다. 변발은 복종의 증표이다. 적당한 타협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를 거부하는 자는 옥석을 불문하고 불태우고 도륙할 것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추진한다. 공에 대한 관리도 엄격하다.
부와 권력이 노력 없이 세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부친의 품계보다 아들의 품계는 한 단계 낮게 책정한다. 무임승차를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것이다. 이 결과 만주족은 지배민족으로서 특수 지위를 누리고, 각종 특권과 이권에 개입해 한족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한다.
누르하치는 현명한 처세로도 유명하다. 명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그것이다. 그는 힘을 기를 때까지 철저한 친명주의자로 행동한다. 매년 조공을 바치고 명에 대한 비판을 누른다. 여진 부족 중 가장 힘이 약했던 누르하치가 세력을 갖게 되고 된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명과의 끈끈한 유착관계 때문이다.
"맑은 거울을 보는 것은 모양을 살피기 위해서요,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는 것은 지금을 알기 위해서다."공자님의 말씀이다. 누르하치의 역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서울종합과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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